섣달 그믐날 정오, 청소를 마치고 잠시 휴대폰을 보다가 대학 단체 채팅방에서 한 동급생이 수이디초우(水滴筹)를 올린 것을 보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섣달 그믐날을 맞아 새해를 기다리며 나와 가족은 오손도손 모여 있었지만, 그녀의 가족은 끝없는 고통에 직면해 있었다.
사진을 눌러 비용 명세를 살펴보니, 그중 한 장에는 총비용이 24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게는 어쩌면 넘기 힘든 고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돕기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지만, 그저 물 한 잔을 보태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러다 아래쪽에 ‘의료보험 기금 지급 18만’이라고 적힌 한 줄을 발견한 순간, 마음이 놓였다. 사회주의가 바로 이 순간 분명하게 구현된 것이다.

예전에는 양로보험의 불공평함을 자주 불평했다. 정년 연장과 불투명한 분배 제도 때문에 현행 체계에 실망했지만, 의료보험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 준다. 목숨을 구해야 할 때 의료보험은 정말로 나서 준다.
문득 의료보험료를 아무리 많이 내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다. 조금 더 내도 괜찮다.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말이다.